어쩌다 어쩌다 보니 세월이 저만치 와 있었다. 노을이 붉다고 내 얼굴에 반사되어 보여줄 때까지 흰머리가 생긴 줄 몰랐다. 글을 잡고 걸어 다니다 누가 나를 보고 시인을 해보라 했다.
제가요
고개를 저었지만, 그날부터 꽃과 노을과 바람과 예쁜 이야기만 써야지 하고 어설픈 출발을 했다.
봄을 노래하고 여름을 부르고 가을과 겨울을 부르다 독도까지 목청껏 불렀다.
그러다 어느 날, 꼭 해야만 하는 시제를 만나고 말았다.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시인하지 말걸, 또 예쁘게 포장만 할까 꽃처럼 그냥 예쁘게 써야지, 말하기 싫은 것을 시로 적으라니 떨어진 숙제 앞에 턱 앉으니 눈물이 툭 떨어졌다.
시인은 소설가도 수필가도 아닌, 인자(人字)가 있어서 사람답게 써야 된다는 걸 처음 알았다. 한 줄에 보따리를 풀어놓으니 한 줄 시가 외줄 타다 툭, 떨어지고 말았다.
사람 인자를 거부하지 못하는 여린 시인은 결국 저녁노을 앞에 마주 서 있었다. 도망갈 수 없는 두 발은 오랫동안 그 깊은 강에 시인이 된 걸 후회하며, 도망갈까 틈만 보고 서성이고 있었다.
달리기 잘하는 나! 도망가고 싶었다. 아픔을
헤집어 꺼낼려니 너무 아파서 차라리 도망을
갈려고 신발을 벗어본다.
아, 다 도려내야 되는구나. 고독한 칼날 위에서 숨겨두었던 그 깊은 선율을 끄집어내어 의식의 제단 앞에 울어야 시인이 되는구나.
두 눈에 강물 담은 그녀는 시 그놈랑 바다로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시제를 꼭 쥐고 조금씩 몇 마디 하다, 젖은 보따리를 나 몰라라 풍덩 던지고 일어서니 서쪽 하늘엔 벌써 노을이 내리고 어설픈 시인은 하늘노트에 시한줄 올리고 있었다.
어쩌다, 시인! 어쩌다 시인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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