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하나, 풍경 둘

담쟁이의 오월

뚜벅 뚜벅 2026. 4. 30. 16:08

담쟁이의 오월

                    
강해원

    
오월이 오면 벽은 다시 낡은 흉터를 드러내고
낮게 읊조리던 바람은 돌연 거칠게 휘몰아친다
그날의 광주는,
갈라진 벽 틈마다 붉은 눈물을 심어놓은 벼랑이었다

갓 태어난 아기의 손바닥처럼
오므린 희망을 쫙쫙 펴서 벽을 짚던 사람들
태극기 한 자락이 유일한 지붕이었고
확성기 너머 터져 나오던 비명은
차마 견딜 수 없어 스스로 넝쿨이 된 외침이었다


세월은 흘러 다시 연둣빛 계절이 오고
담쟁이는 죽지 않아 해마다 고운 손가락을 내민다
여전히 척박한 콘크리트 벽 위로
어린잎들은 서로의 손목을 조심스레 움켜쥐며
혼자서는 오를 수 없는 높이를 향해
서로를 밀어 올리는 푸른 연대가 된다


아직 우리가 꿈꾸는 나라의 이름은
저 담벼락 너머 아득한 수평선에 걸려 있지만,
끊어질 듯 이어지는 넝쿨의 매듭마다
오월의 심장은 여전히 고동치고 있다


넘어야 할 벽이 높을수록
담쟁이의 손길은 더욱 단단하게 벽을 쥐고
우리는 오늘도, 그 푸른 민주주의 행렬의 끝에서
조금씩 오고 있는. 봄을 향해 한 마디씩 자라난다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저기 담쟁이너머 저기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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