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의 겨울 /강해원
누군가 서둘러 담을 넘었습니다.
서슬 퍼런 공기 꿀꺽삼키며
흰 도포 자락 잔상으로 남기고
쿵, 무거운 소리 내며 넘어갔습니다.
소스라치게 놀란 담쟁이들
척박한 담벼락을 타기 시작합니다
비명을 지르는 대신 몸을 낮춰 작은발
턱턱 걸치며 깎아지른 절벽을 기어오릅니다.
우리가 반드시 넘어가야만 닿을 수 있는 그곳,
갈수밖에 없는 숨 쉴수 그곳을 향해
담쟁이들은 서로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손에 손 맞잡고
척박한 벽을 기어오르며
마침내 붉게 물든 담쟁이들이
성난 파도처럼 그 벽을 넘어설 때,
차갑게 굳어있던 담벼락
짙은 어둠이 걷히고 담쟁이들은
붉게 타오릅니다
그날, 시린 겨울 어느날



'글 하나, 풍경 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보고싶은 얼굴/ 강해원 (26) | 2026.03.08 |
|---|---|
| 그곳에도 없다/강해원 (12) | 2026.03.07 |
| 나란히 나란히 (6) | 2026.03.06 |
| "붉은달 (BIood Moon)" (6) | 2026.03.06 |
| 청령포 비가 (15) | 2026.03.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