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겨울의 잔해를 다 털어내지 못한 몸이 바닥과 하나가 되어 꿈쩍도 하지 않는 날이다. 머리 하나 들기 버거운 나태의 시간 속으로, 창밖의 무채색 바람이 살랑살랑 흰자락날리며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있었다.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살랑이는 공기가 왠지 모르게 낯설기만 하고 내 몸은 가자미처럼 납작 엎드려 끙끙거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내 몸보다 더 간절하게 봄을 기다린 존재가 나를 깨운 건. 천근만근인 몸을 억지로 일으켜 나가 보려고 허리를 굽혀 신발을 꿰어 맞추는 나를 보며, 우리 집 귀염둥이 두 발을 세우고 꼬리를 흔든다. '같이 가자' '봄이 저기 있다고' 꼬리에 이정표를 달아 살랑살랑 흔드는 몸짓 앞에서, 나는 귀찮니즘이라는 낡은 외투를 결국 벗어던졌다.
녀석을 살짝 끌어안자, 겨우내 굳어있던 내 어깨 위에 구르미의 온기가 내려앉았다. 너무나 포근하지만 무거운 무게에 다시금 주저앉을 뻔했지만, 구르미의 맑은 눈망울은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현관문 빈틈 사이로 봄이 우리를 사정없이 끌어 당기고 있었다.
결국, 녀석의 발걸음에 맞춰 계단을 깡충깡충 내려선다. 봄은 이다지도 우리를 밖으로 유혹하는 가벼운 천사의 날개와 같다. 구르미의 마음에도, 내 마음에도 그 날개가 내려 꽂히는 순간, 세상은 일제히 봄이라는 날개로 바람을 만들어낸다.
어느새 도착한 길목, 붉은얼굴 가다듬고 홍매화가 나를 맞이한다. 녀석도 나도, 잠시 멈춰 서서 봄의 한복판에서 깊은숨을 들이마시다 빨갛게 취해버려 홍매화가 되고 만다.
참 다행이야 이렇게 또 봄이 오니 그리고 홍매화를 볼수있으니 좋다. 곁에 다정한 우리 구르미가 봄처럼 있어주어서 난 오늘도 가볍게 봄길을 걸어보며 하루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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