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무더운 여름날, 가문(家門)의 가파른 기울기가 전신으로 느껴졌다. 가난은 구구절절한 설명도 없이, 아주 슬픈 곡조를 띤 숙제 꾸러미를 내 앞에 툭 던져놓았다. 그러고는 무심하게 묻는 것이었다. “야 한번 견뎌볼래”
동네에서 가장 큰 기와집을 올렸던 아버지는, 그 여린 마음만큼이나 쉽게 엄습해 온 가난 앞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말수가 줄어든 아버지 곁에는 예쁜 엄마의 날 선 잔소리만 쌓여갔다. 아버지를 향해 다가가던 나의 발걸음은 늘 그 방문 앞에서 멈칫거리며 서성이다 돌아섰다. 나의 청소년기는 집만 덩그러니 컸을 뿐, 창고는 바닥을 보이며 고갈되어 가고 있었다. 우리는 넓은땅을 팔기시작했고 그 마당이넓은 기와집도 주인이 바뀌고 대구중구의
어느 가파란 언덕 도시의 기와집으로 순간이동했다. 그날 맞닥뜨린 마당과 담은 숨이 막힐정도록 간격이 심하게 좁아져 난
한동안 낯선환경에 숨을 몰아쉬었다. 그래도
내삶은 꼼지락꼼지락 살고 있었다. 오랫동안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습한 기운이 발등을 타고 올라와 신발과 옷, 몸속 깊은 위장에까지 천천히, 그러나 아주 깊숙이 스며들었다. 태어나 처음 마주한 이 팽팽한 긴장감은 내가 사랑하는 아버지의 어깨를 저 밑바닥 가난의 대지가 밧줄을 매어 끌어당기는 듯한 형국이었다. 도대체 무얼하신거야 묻고 싶어도 늘 미안해하셔서
입을 다물고 견딤을 선택했다.
그때부터 나는 생(生)에 정면승부를 걸었다. ‘받아들이자, 해보자, 할 수 있다.’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묵언의 되뇜은 나의 20대를 지탱하는 유일한 주문이었다. 가끔 피로에 찌든 몸이 코피를 쏟아내며 경고를 보냈지만, "설마 죽기야 하겠어"라는 심정으로 뛰고 또 뛰었다. 낮에도 일하고 밤에는 일하며, 나의 구두는 늘 바쁘게 딱딱 소리를 내며 긴 가난의 터널을 헤쳐 나가고 있었다 먼 훗날 우연히 만난이가 늘 저리 딱딱거리며 바삐 살까 나를 신기하게 봤다고 했다. 가난은 타인의 눈에는 발자국소리도 효과음을 내는구나를 처음 알았다. 지금은 웃으면서 " 그때 힘들었다고 " "그래 정말 몰랐다. 하도 순간이동을 잘해서 토끼인줄 알았다" 고 했다. 내가 토끼는 토끼지! 지금도 순간이동은 정말 잘한다.
대구에서 서울까지 바람처럼
내몸은 잘도 날아다닌다.
대구 중구의 덕산레스토랑, 당시 시내에서 가장 높은 빌딩에 위치한, 한 번도 가본 적 없던 그 화려한 곳의 문을 밀고 들어갔다.
내손에는 전봇대에서 뗀 전단지가 가장 작은 네모로 접혀있었다. 남들은 긴 휴가를 떠나던 그 뜨거운 여름, 나는 등록금을 마련하고 내 사랑하는 아버지를 예전의 당당한 모습으로 돌려놓고 싶다는 간절함 하나로 그 가난의 허허벌판에 마주 섰다.
"저, 저녁에 아르바이트하고 싶어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입을 뗐다. 화려한 홀의 조명 아래 나의 가난이 발가벗겨진 채 떨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어디든 숨어서 일하고 싶은 마음에 "저요 설거지 잘해요"라고 덧붙였지만, 사장님은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무심하게 결정하셨다.
" 넌 홀에서 주문받으면 되겠네."
싫었다. 정말이지 숨고 싶었다. 다시 한번 설거지만 하겠다고 고집을 피워봤지만, 사장님의 단호함 앞에 나의 바람은 툭 꺾였다. 결국 나는 하얀 블라우스에 짧은 치마를 입고, 익숙하지 않은 힐을 신은 채 홀에 던져졌다.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외계어 같은 메뉴들을 주문받아야 하는 기막힌 변신이었다.
첫 주문의 순간을 잊지 못한다. 메모지를 들고 선 내 앞에 한 중년 신사가 와인부터 함박스테이크, 수프 종류까지 줄줄이 읊어댔다. 실수할까 봐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수프 종류는 왜 그리도 많은지, 대충 먹지 고기는 왜 그냥 고기가 아니고 익힘 정도를 따져야 하는지. 그들의 저녁식탁이 춤출 때, 나는 연필로 이상한 외계어를 적어대며 가난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지독한 가난은 오래도록 나를 붙잡고 흔들었으나, 견디는 힘 또한 시간의 흐름과 함께 단단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우려하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 주문을 받으러 간 테이블에 낯익은 얼굴이 앉아 있었다.
"어? 너 여기서 뭐 해?"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그 아이를 보는 순간, 나의 자존심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평소 멋스러운 옷차림으로 뽀얀 부유함을 짐작케 했던 아이. 나는 빨개진 얼굴을 감추며 차갑게 응수했다.
"그냥 아는 분이 도와달라고 해서 주문하시죠."
낮에도 일하면서 힘들지 않냐는 걱정 어린 물음에 속으로는 그래, 다리 아파 죽겠다! 돈가스든 뭐든 빨리 시키기나 해!라고 소리쳤지만, 겉으로는 엷은 미소를 띠며 "응 괜찮아"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홀을 돌아다니는 내내 그 아이의 시선이 뒤통수에 박혀 짜증이 났지만 구두소리를 딱딱거리며
제발 좀 빨리먹고가를 외쳤다.
그날따라 대구시민들이 다 모인 듯 정신없이 나를 뱅뱅 돌렸다. 뭘 하면 친절하게 일은 왜 이리 잘하냐 그날은 내성실함과 견디는힘이 강한 나 자신이
짜증 나기 시작했다.
밤 11시, 파김치가 된 다리를 끌고 가게 문을 나설 때 그 아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들을 먼저 보내고 혼자 남은 그는 "힘들었겠다, 집까지 데려다줄게"라며 호의를 베풀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그 호의를 받아낼 여유가 없었다. 그냥 기다리고
있는 게 푼수같이 짜증 났다. 뭐야 나 동정하는 거야 금세 인상은 차갑게 토라지고 있었다.
"나 안 힘들어. 다리도 안 아프고, 그냥 하루 도와준 거야. 집에도 혼자 잘 가니까 걱정 마! 너 허락도 안 맞고 왜 기다려!"
묻지도 않은 말들을 스무고개 넘듯 쏟아내고는 바람처럼 그 자리를 쌩 떠나버렸다. 엘베 문이 열리자 그냥 나는 타고 타려는 그 애를 밀치고 문을 1초 만에 닫아 버렸다. 그 일이 있은 후, 사장님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나는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며 덕산레스토랑을 그만두었다. 내게 그곳은 다시는 갈 수 없는 마음의 금지구역이 되었다.
가끔 그때를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난다. 나의 가시 돋친 언어들에 아무 대꾸도 못 하고 굳어버렸던 그 아이의 얼굴이 떠올라서다. 배려의 마음을 자존심이라는 방어막으로 밀어냈던 그 시절의 서툰 모습이 지금도 작은 미안함으로 슬픈 웃음이 남는다.
내 가난이 들키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싫었던 어느 여름날 나의 20대는 그렇게 고단함과 슬픔을 견디며, 그러나 누구보다 치열하게 반짝였다. 돌아보니 그 모든 순간은 가난에 패배한 시간이 아니라, 그것을 온몸으로 통과해 낸 광야에서 홀로 버티는 찬란한 하루였다.
그 애는 그날의 자존심이 하늘을 찌른 나의
하루에 준비 없이 부딪혔던 그 낯선 분위기를 기억이나 하는지 모르겠다.
"미안해"
그냥 그때는 나도 몰라
견딘다고 힘들었나 봐 갑자기 다가온 가난이
나를 그렇게 곳곳 하게 만들었나 봐
지금은 그 추억의 덕산레스토랑도 없어지고
그 낯설었던 넓은 홀도 둥근 식탁 위 가지런히 놓여있던 하얀 천위의 나이프들만 기억 속에 나란히 줄 서서 나를 기억 속으로
가끔 당겨가서 반짝거린다. 나의 고단했던 그날의 기억속 반짝이는 나이프들의 가지런함속에 비집고 누워있는 20대의 뜨거운 날은 애뜻하게 하루 시간여행을 한다.




신인작가 (시, 수필, 소설, 동시 동화) 등용문 글빛문학 문예지로 빛을 발하다(30년 전통 문예지)
https://m.blog.naver.com/hanwoori380/224283880945
신인작가 (시, 수필 ,소설,동시 동화)등용문 글빛문학 문예지로 빛을 발하다(30년 전통 문예지)
글빛문학'은 신인 작가 발굴과 문학의 저변 확대를 위해 운영되는 대표적인 문예지 중 하나입니다. 글...
blog.naver.com
https://youtu.be/ffFwDZzbjSw?si=1b1CuF6UdHGgeSS_
[ENG/ESP] AKMU charla y escenario #TheSeasons | KBS WORLD TV 260501
#TheSeasons #성시경 #Sung_Sikyung #더시즌즈 #고막남친 #Ear_Candy#AKMU #악뮤 #악동뮤지션 #이찬혁 #이수현Copyright ⓒ KBS. All rights reserved. ✔️Visit KBS WORLD TV Official PagesYout...
www.youtube.com
'글 하나, 풍경 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가보지않는 길/강해원 (6) | 2026.05.15 |
|---|---|
| 수서역/강해원 (3) | 2026.05.15 |
| 시인 소설가 수필가등 작가로 등단하는 방법( 국내 1급문예지 /30년전통 국내문예지) (1) | 2026.05.13 |
| 자작나무의 망명(亡命)/강해원 (6) | 2026.05.12 |
| 백치미(白痴美)/강해원 (4) | 2026.05.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