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은 바람을 가르고

어느 봄날, 교정 한복판을 둥글게 에워싼 트랙 위로 반별 대항의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습니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아이들의 발걸음 소리는 가쁜 심장 박동처럼 고막을 때렸고, 마지막 주자로 선 나의 가슴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콩닥거렸습니다. 아, 우리 반은 꼴찌였습니다.
저 멀리, 도저히 좁힐 수 없을 것 같은 거리를 두고 절벅거리며 달려오는 우리 반 주자가 보였습니다. 먼지만 허탈하게 날리는 그 뒤모습을 보며, 계단 층층이 쌓인 친구들의 긴 한숨이 무겁게 내려앉았습니다. 결승전이라는 희망이 땀방울과 함께 흙바닥으로 툭툭 떨어지던 그 찰나, 나는 거추장스러운 신발과 양말을 벗어던졌습니다. 우리 반의 남은 열기마저 뜨겁게 끌어안듯이 얼굴만 붉게 달아올랐습니다.
맨발에 닿는 거칠고 뜨거운 흙의 감촉이 찌를 듯 오기를 깨웠습니다. 이를 악물고 아득한 거리에서 다가오는 친구를 향해 역주행 달리기를 하며 친구에게 갔습니다 . 패배감이 섞인 바통을 건네받는 순간, "걱정 마!"라는 짧은 찰나의 비명을 남기고 내 안의 무언가가 폭발했습니다.
'괴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그 시절의 노래가 왜 그리 가슴을 치던지, 내 몸에 주인공 하니가 살아온듯 거침없이 내달렸습니다. 풀 죽어 고개숙인 친구들이 일제히 동시에 함성으로 내 이름을 목청껏 부르며 반을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그 비명 같은 함성을 등 뒤에 밀어주는 세찬 바람으로 삼아, 맨발로 땅을 파헤치듯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앞서가는 아이들을 하나둘씩 미안하지만 지워나갔습니다. 발바닥에 박히는 돌멩이의 통증보다, 내 이름을 부르는 저 간절한 희망의 무게가 더 뜨거워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마지막 흰 끈을 멋지게 가슴에 가르고 두 팔을 번쩍 든 순간, 세상은 정지한 듯 고요했습니다. 이내 터져 나오는 환호 속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고, 나는 그대로 쓰러졌습니다. 상처투성이가 된 맨발은 훈장이 되었고, 그날의 공기는 우리 반 모두의 자부심으로 일 년 내내 우리를 하나로 묶어 주었습니다.
지금도 문득 삶의 기로에서 숨이 찰 때면, 운동장 한복판에 신발을 벗어던졌던 그 단발머리 시절의 용기를 떠올립니다. 참으로 눈부시고 멋진, 나의 찬란했던 하루! 휘날레였습니다.
친구들아, 그날 추억의 휘날레를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보고 싶네. 언젠가 걸을 수 없는 그날까지, 그때의 함성을 잊지 말고 생의 바람이 불 때까지 '하니'처럼 살아가기를 바래본다! 진심으로
우리의 삶이 희게, 눈부시게 흰 눈이 덮일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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