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는 참 평온했다. 부지런하고 못하는 게 없었다. 뚝딱 만드는 것도 잘 만들어 내셨다. 그는 나의 우상이자 내 정서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고. 특히 그는 대인관계가 뛰어났다.
어릴 적 절박한 외부폭력 앞에 죽음이 경각에 달려 목이 쉬도록 불렀을때도 언제나 처럼 멋지게 달려왔던 사람. 한 방 날리고, 그 손으로 머리를 쓸어주던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큰 버팀목이었다.
아버지를 엎드리게 하고 등에 차가운 물 한 바가지를 부어드리는 것도 내가 했다. 등의 까만 점을 헤아리며 깔깔 웃었다. 시차를 두고 머리 위에 확 부으면 숨을 못 쉬다가도, 에이 이놈의 자식—하고 웃으시던 그 얼굴이 그립다.
무조건 내 편이었다. 단 한 번도 나를 기다리게 하지 않았다. 비 오는 날이면 엄마 대신 우산을 들고 교문 앞에 서 계셨고, 직장에 나간 내가 전화를 드리기도 전에 먼저 수화기를 드시던 사람. 언제 오나, 고구마 삶아놨어. 용돈을 드리면 괜찮다며 쑥스러워 손을 내저으시던 그 손.
여든이 넘어 응급실 침대에 누워서도 링거를 스스로 빼고 집으로 가버린 사람. 내가 살 만큼 살았다. 조금도 흔들리지 않던 그 지론. 꽃을 좋아하고, 화를 낼 줄 모르고, 밤새 침대에 기대어 내 얘기를 다 들어주던 그런 남자를 나는 그전에도 그 후로도 본 적이 없다.
5월이 다가오면 멀리 떠나버린 내 아버지가 진짜 그립다 단 하루라도 다시 살아서 만날 수 있다면 고맙고 고마왔던 힘들었던 그 순간에 지켜주셔서 감사했다고 내 마음을 잘 다듬어 표현하고 싶다 그리고 손잡고 예쁜 꽃길을 걷다 맛있는 밥한상 내 손으로 해주고 다시 떠나보내드리고 싶다
아버지 저도 이제 아버지처럼 늙어 가고 있어요 늘 얘기하시던 죽음을 대하는 자세가 기억나요 듣기 싫어서 외면했던 그 말을 나도 우리 애들한테 하고 있네요 듣기 싫어서 나처럼 외면하면 참 똑같구나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