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하나, 풍경 둘

자줏빛 벨벳/ 강해원

뚜벅 뚜벅 2026. 5. 16. 05:47

아버지는 참 아름다운 선을 가진 분이셨나 보다. 아득한 유년의 기억 속, 우리 집 마당은 늘 자줏빛으로 물든 고급스러운 천들이 파도치듯 일렁였다. 아버지는 집에 커다란 기계를 여러 대 들이고 동네 사람들을 모아 일을 시작하셨다.

그 자줏빛 벨벳의 부드러운 감촉을 타고 부(富)는 마르지 않는 샘처럼 우리 가족에게 펼쳐졌다.
늘 사람들이 북적였고, 일하는 이들의 손길로 집안은 분주했다. 정성스레 짜인 천 묶음들이 부산 국제시장으로 실려 나갈 때마다, 그 고급스러운 자줏빛은 ‘돈’이라는 거대한 꾸러미가 되어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왔다. 고왔던 엄마는 돈 귀한 줄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잘생긴 아버지는 그렇게 밀려 들어온 돈으로, 농사지을 줄도 모르면서 그 많은 땅과 그 땅의 중앙에 있던 어느 대학교수의 집을 사들였다. 기와를 얹은 멋진 집, 마당 가득 아버지가 정성스레 가꾼 꽃밭이 차려졌다. 그땨까지만 해도 아버지의 인생은 반짝반짝했다. 늘 나보고
넓은 집 오니 좋지를 연발하셨다.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백구두를 신으셨다.  늘 곱게 살고 싶어 하셨다.


그냥 자줏빛 벨벳 그 당시의 고급천을 더는 만드시지 않고  참 내가 봐도 서툰 농부로 변신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랬을까 싶다.
내가 해봐도 농사는 돈 벌기 힘든 직업이었다.
아버지는 선천적으로 땅에 오래 그들과 호흡하면서 농사짓는데 힘든 바보 같은 농사꾼이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하다가 늘
생각에 빠져 그늘에 멋지게 하염없이 시를 쓰듯  앉아계셨던 것 같다.  내가 지금 그네에 앉아 흔들흔들 땅을 보며
시를 쓰듯 나의 아버지도 시를 쓰고 계신 듯했다.  그냥 농사는 바라보는 것만으로
안된다.  오랫동안 납작 엎드려 그들과 호흡을 해야 된다. 해보니 더  알겠다.
나도 아버지처럼 땅만 사랑하는 허당농부다
꽃피면 "햐 꽃이 예쁘다" 꽃이 지고 열매 맺히면  예뻐서 열매 솟구는 걸 못해서 딸려니 아기들이라 아파서 못 떼고 만 지막 만 지막 그래도 너도 얼마나 한겨울을 버티고 있었지 끝까지 가보자하며  큰 열매를 키우지도 못하고  조롱조롱 다 달아 가지가 꾹 꺾어져 무겁다고 살을 덜어내 놓고 사과나무가 운 적이 많다.  그렇게 부러진 가지에도 또 다음 해까지 팔이 부러진 장애인 되어 그래도 꽃은 피었다.


그러니 자줏빛 벨벳에서 농사로 바꾼 아버지의 생업은, 자연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가차 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가끔 내 생애 첫 집이 꿈속에 나타나곤 한다. 그 꿈속에서는 늘 아버지와 엄마의 날카로운 파열음이 세차게 들려왔다. 끝없이 욕심을 내는 엄마를 향해, 아버지는 조용히 아궁이 앞에 앉아 계셨다. 그리고는 그 귀한 돈을 한 장 한 장 불길 속으로 던져 넣으셨다.
“돈이 그리도 좋으냐…….”
낮고 조용한 음성으로 혼잣말을 삼키시며 돈을 태우시던 아버지. 내 나이 겨우 여섯 살 남짓이었을까. 그 모습은 어린 내게 어떤 철학적인 문장으로 날카롭게 꽂혔다. 그 잔상은 평생토록 내 마음속 깊은 기둥이 되어 삶을 지배했다. 돈이란 그저 한 조각 나뭇잎에 불과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신 아버지는, 참으로 특이하고도 가여운 예술가였다.

직업을 바꿔 시작한 농사는 가혹했다. 하늘은 무심하게도 몇 해 동안이나 굵은 얼음돌, 우박을 쏟아부었다. 마치 “너희 집은 이제 가난을 체험해 보라”며 하늘에서 돌을 던지는 것만 같았다. 가차 없이 내리치는 가난은 머리 위로, 가슴팍으로, 그리고 걸음걸음마다 쇠고랑을 채우듯 우리 식구들을 가혹하게 끌고 다녔다. 정든 곳을 떠나기 전까지, 그 넓던 땅과 넓던 집에는 쌩쌩 구슬픈 바람만 불뿐, 아무것도 남지 않은 황무지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토록 정겹고 분위기 있던 집이 결국 타인의 재물로 넘어가던 날, 우리는 이삿짐을 쌌다. 엄마 뒤에서 졸졸졸 따라 걸어 내려오면서도, 자꾸만 두고 오는 집이 눈에 밟혀 내 고개는 자꾸만 뒤를 향했다. 목이 45도 각도로 꺾일  무렵, 엄마는 내 손을 확 낚아채며 다그쳤다.
“넌 시골이 그리 좋냐? 한 번만 더 돌아봐 빨리 가자!” 엄마는 늘 그랬다.  그때도 먼지 나는 흙길을 살금살금 나풀나풀 도시로 향해 잘도 걸어갔다.

처음으로 잡아준 엄마의 손은 차가웠고, 나를 당신의 치마 끝자락으로 거칠게 당겼다. 그 서슬 퍼런 파열음에 나는 속으로만 문장을 삼켰다. ‘엄마, 난 저 집이 좋아요. 그리고 반딧불이 숨 쉬는 여기가 참 좋아요.’

그 후로도 오랜 시간, 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그 집 앞을 찾아가 걸음을 멈추고 과거의 기억을 바라보곤 했다. 마당 깊은 그 집은 참 넓기도 했었는데. 다시 찾은 그곳에서 아버지가 정성껏 가꾸셨던 꽃밭은 흔적도 없이 무너져 있었고, 고운 조롱조롱 등을 달던 감나무도 베여 나가고 없었다. 기와집 마당을 차지한 건 커다란 닭장과 마당을 메꾼 삭막한 비닐하우스뿐이었다. 그 변해버린 모습을 보고 나서야 역설적이게도 나는 외면할 수 있었다. 그 아름답던 집의 기억을 지우기가 한결 쉬워졌다.
바보 같은 우리 아버지는, 어린 나보다 속이 얼마나 더 새까맣게 타들어 가셨을까 싶다.

그래서였을까. 그 후 아버지는 북을 치고 징을 치고  장구를 치며, 미친 듯이 그 장엄하고도 슬픈 삶의 길을 둥둥둥 건너가기 시작하셨다.
징을 치실 때면, 그 우렁찬 징 소리에 맞춰 흔들리는 아버지의 머리는 가히 신(神)의 영역에 닿은 듯 경이로웠다. 전국의 민속공연에서 두각을 나타내시며 놀이마당마당을 종이에 그리면서 연습하셨다. 이렇게 동그라미 그리다 이쪽으로 돌다 빠지면 좋겠지 하시면 달팽이 그리듯 풀고 빠져야죠 하고 나는 옆에서 춤을 추며 한술 뜨는 포즈를 보이곤 했다. 내가 뭘 안다고
아무튼 한국적인 소리는 나의 온몸에 젖은 나뭇잎처럼  묻어있다.


장고의 세월을 보내고  고산농악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그 신명 나는 소리에 의지해 모진 세월을 오래오래 버텨내셨다. 세월이 흘러 온몸에 힘이 다 빠지셨을 때는, 커다란 깃발을 들고 그 깃장대에 겨우 몸을 의지한 채, 아무것도 들지 못한 채 당신의 마지막 삶을 찬란하게 흔들고 계셨다. 지독히도 사랑했던 아버지 머리에서 수도 없이 만들어진 그 몸짓 하나하나는 지금도 그 형태는 어릴 때 쪼그려 앉아서 보았던 수도 없이 고치고 연습하던 그 12명의
그분들의 맥을 그대로 전승되어 영상을 보면 똑같이 빛을 발하고 있다. 초창기 멤버 중에 다양한 악기를 다루면서 현재의 모습을 형태를 갖추는데 큰 역할을 하신 거를 나는 안다. 꽹과리, 소고, 북, 장구, 징을 다룰 줄 아셨고 마지막엔 손때 묻은 징 방망이로 징으로 선두에서 전체를 다루는 경이로운
한국인의 모습을 갖추고 계셨다.  징으로 선두에 서서 박자에 맞추어 오랜 여운이 남는 징을 팔목으로 돌려 멋지게 꽝 울림을 내시면 소리는 길게 길게 저 멀리까지 울려 퍼졌다.
그 소리의 여운은 지금까지도 나에게  들린다.


그것은 가난에 굴복하지 않은 한 인간의 마지막 불꽃이었다. 아버지의 운은 그리도
오래 비켜 갔다.  그 뒤 팔아버린 그 땅 그 집은 대구에서 가장 빛난 수성구로 편입되어 엄청난 보상과  월드컵이라는 2002년 붉은 기운아래 우리 집 고향은  아버지의 추억과 함께 거대한 개발에 다 삼켜버리고
거기에 남은 우리 작은집만 수성구의 찐 맛을 느끼고 있다. 그 좋아했던 월드컵 4강을 못 보시고 홀연히 눈감듯 이 세상을 준비하신 듯 마감하시고 별이 되셨다.  

그래도 다행이구나 싶다. 구순을 바라보는 내 엄마 같은 숙모님이 계셔서 시간이 날 때마다 실개천이 흐르는 그 마을에 자주 아버지가 걷던 그 길을 걸어 다닌다.  거대한 개발 뒤에도 대구시 무형문화재 1호라는 없앨 수 흔적을 남긴 초창기 어르신들 덕분에 추억의 당산나무는 베어졌지만 일부만 남아있어서 그래도 힘들면 자주 찾아가 돌고 돌아다닌다.



지금도 가끔 길을 걷다 자줏빛 벨벳 치마를 보거나 그 색감의 옷을 마주하면, 가슴 한구석이 아련해진다. 나도 모르게 다가가 그 부드러운 감촉을 오래도록 손길로 느껴보곤 한다. 보들보들한 촉감은 오래 손끝에서 남는다.

자줏빛 옷을 입는 날이면, 나는 마법처럼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 일꾼들이 많아 늘 부산했고, 풍요로운 자줏빛 그리움이 가득했던 나의 첫 집, 나의 유년 시절로 나는 오늘 그 그리움의 벨벳 조각을 저 푸른 하늘을 향해 높이 던져본다. 아버지가 계신 그곳까지 닿기를 바라며.  아버지 그냥 그 예쁜 벨벳만 하시지 농사랑
어울리는 얼굴은 아닌 듯한테 그 많은 땅을 사가지고

오랫동안  휘청휘청 힘들게 사셨는지 내가 어른이 되고 보니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그래도 늘 아버지가 좋았어요
저 멀리 보이기만도  난 쏜살 같이 달려갔다. 아버지는 그냥 웃으시며 나를 안아주고 손잡아 주셨던 것 같았다.
이 5월이 다 가기 전에 아버지를 다시 불러본다.
그곳에서는 내가 던진 자줏빛 벨벳천으로 하늘 끝까지 깔아드릴 테니 그때의 영광을
찾으시길 빌어요

살아보니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될 수 없는 거라는 것을
배우며 참아야 되고 받아들여야 되고 견뎌야 된다는 것을  알기에  오늘도 휘청 휘청  걸음을 걸어본다.

아버지가 떠난 그날처럼 저도 그렇게 그때까지만 살아가보기로 마음을 먹고

마지막 삶을 보낸다.  늘 내 마음엔 아버지의 징소리가 울리고 난 그 소리에 맞춰 시를 쓴다.

나도 아버지를 닮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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