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비가 빨갛게 익고 있었나 보다. 우리 집 1층 야외 베란다에, 바람을 타고 온 양귀비 홀씨가 가만히 내려앉았었나 보다. 수천 년 동안 세상 모든 예쁨의 대명사로 불리던 그 붉은 꽃이, 왜 하필 나의 베란다에 씨를 뿌렸을까 , 난 한 번도 본 적도 없는데
그 집 여자는 늘 슬픈 표정으로 베란다 문을 열지 않았다. 누가 왔는지도, 무슨 계절이 가고 오는지도 모르는, 허공에 눈을 박아둔 채 가슴만 쥐어뜯던 하얀 백치미의 여자였다. 양귀비가 놀러 와 아무리 붉은 손을 흔들어도 여자의 마음은 차갑게 닫혀 있었다.
강력계 형사가 나를 호출하기 전까지는, 그 양귀비 두 포기가 밖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나를 바라보고 있었나 보다. 방 안에 너무 갇혀 지내는 내가 못내 걱정이 되었나 보다. 제발 밖으로 나오라고,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오라고 빨갛게 너울너울 춤만 추다가, 결국 지나가던 강력계 형사의 드론 눈에 딱 걸리고 말았다.
"저... 양귀비 때문에 왔는데요."
그 집 1층 여자는 모처럼 큰 외출을 감행했다. 강력계 형사를 만나러, 태어나서 처음으로 무시무시한 취조실의 문을 노크했다. 양귀비가 마약성이라고 오라 해서 콩닥콩닥 다가섰다. 강력계를 들었나 봤나 문을 열고 들어가니 덩치가 산 만한 사람 다섯 명이 앉아 나를 마치 외계인 보듯 쳐다보았다. 내 입에서 흘러나온 양귀비라는 이름은, 수천 년의 예쁜 꽃이 아니라 법을 어긴 무서운 괴물로 변신해 있었다. 만난 적도 없는 양귀비는 백치미여자를 그 무서운데 쑥 집어넣어 버렸다. 마치 정신 차리라는 듯이
"전 정말 몰라요. 언제 왔는지, 언제 씨가 날아왔는지, 그리고 언제 저렇게 빨간 꽃이 피었는지……."
다급한 변명 끝에 겨우 숨을 고르며 덧붙였다. 그냥 양귀비가 나를 밖으로 꺼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나 봐요, 제가 그동안 좀 많이 아팠거든요.
파리하게 질린 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강력계 형사는, 내 슬픔의 깊이를 읽었는지 "그런가 보네요, 좀 쉬셔야 되겠네요"라고 낮게 중얼거리며 1번부터 쭉 묻고 조서를 꾸미더니 나를 풀어주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양귀비 때문에 뒷걸음으로 나온문 앞에서 다소곳하게 구십도로 "수고하세요" 하고는 나왔는데 그때는 억울한 것도 느낄 수 없는 무중력의 상태라 그곳을 벗어나는것만으로 그냥 나비로 환생한 기분으로 경찰서에서 집까지 나비처럼 날아서 순간이동했다. 지금 생각해도 강력계의자가덜덜뜨리는것같다. 내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가장 강력한 진동이 백치미를 흔들고 지나갔다. 그런데 살짝
궁금은 하다. 그 양귀비가 우째생겼는지
그날 이후, 나는 바짝 긴장해서 움츠렸던 마음의 빗장을 풀고 세상 밖으로 외출을 시작했다. 양귀비는 그렇게 나도 모르게 우리 집에 찾아와 나를 흔들어 깨웠다. 나를 가둔 감옥 같은 방에서 꺼내주려 스스로 제 몸을 던진 붉은 잎 양귀비 두 포기, 그해 초입의 여름 그 양귀비를 따라, 그 여자는 조심스레 밖을 나설 수 있었다. 양귀비는 백치미를 정말 사랑했나 보다. 증거물로 뽑아 가 버린 양귀비는 얘기만 듣고 조사만 받았지 한번도 본적이 없다.
꿈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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